야쿠시마 트레킹
1. 조몬스기 코스
야쿠시마를 대표하는 신령한 나무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코스입니다. 코스의 길이는 22km, 대략 8~9시간을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코스지만, 야쿠시마엔 온 이상 걷지 않을 수 없는 길입니다. 하루정일 걸어야 하는 만큼 도시락과 물, 간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숙소(민숙)에서 소개받은 도시락집에 도시락을 주문하면 새벽에 숙소에 배달해줍니다. 버스를 타고 조몬스키 코스의 시작인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로 갑니다. 미야노우라 시내 곳곳에 버스가 서기 때문에 숙소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야쿠스기 자연관에서 내립니다. 이곳에서 전용 셔틀버스(1인 850엔)로 바꿔 타고 30분을 가면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로 가면 됩니다. 코스가 길다고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체 코스의 반 정도는 벌목을 위해 만들어졌던 기찻길을 따라 걷는 데크 코스라 편안히 걸을 수 있습니다. 산의 중심으로 이어진 기찻길 옆으로 푸른 나무들이 하늘 위로 쭉쭉 뻗어 있습니다.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막강한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지 막혀있던 코가 뻥~뚫리며,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우리가 숨 쉬던 도시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신선함이 느껴집니다. 과연 조몬스키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하며 길을 재촉합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초행길이고 산속은 해가 빨리 지니깐 너무 느긋하게 걸을 수는 없습니다. 야쿠시마는 강우량이 엄청난 곳입니다. 지금은 봄이지만, 지난밤 내린 비인지, 새벽에 내린 이슬인지 땅은 촉촉하고, 나무를 뒤덮은 이끼 위에도 습기가 가득합니다. 야쿠시마의 삼나무를 벌목하여 팔기 위해 만들어진 기찻길 위에는 야쿠시마의 숲을 보기 여행객이 가득합니다. 1970년대 야쿠시마의 나무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다면 야쿠시마의 나무들은 사라졌을 테고, 그렇다면 이 길을 걷는 여행객도 없을 거라 생각하니 당장의 이익보다 숲을 지킨 야쿠시마 주민들의 선택이 참으로 현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라가와 등산로 입구에서 3시간 정도를 걸으면 철도 구간이 끝나고, 오오카보 등산로가 나옵니다. 이제부터는 경사로가 시작되어 힘들지만, 풍경이 훨씬 극적으로 바뀝니다. 그야말로 노거수, 수령 1000년 이상의 고스기와 야쿠스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둥치에서 위를 바라보면 하트가 보이는 윌슨 그루터기가 보입니다. 그루터기의 둘레가 무려 14m. 그루터기에 들어가면 마치 방에 들어온 것 같네요. 윌슨 그루터기를 지나면 거대한 나무 사이로 나무 계단이 이어지면서 더 깊고 장엄한 숲으로 들어갑니다.
부부 삼나무, 대왕스기를 지나 산속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이 숲의 주인공, 신령한 할아버지 나무 조몬스기를 만납니다. 높이 25m, 둘레 14m의 거대한 나무가 보입니다. 조몬스기입니다. 조몬스기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 바로 밑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곳에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아서 관찰하기는 좋습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나무,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시간을 견딘 대자연을 만나기 위해 먼길을 온 만큼, 조몬스기 앞에선 사람들은 여러 감정을 느끼나 봅니다. 어떤 이는 감격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 없이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살지만, 실제 지구의 지배자는 식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산소를 만들고, 푸르름을 만들고, 그늘을 만들며, 흙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자연을 키우는 '식물'이란 지배자에 대한 경외심. 조몬스기를 대한 특별한 느낌은 아마도 수천 년의 시간을 살아내었고, 지금도 살아있는 늙은 생존자에게 표하는 존경과 감사의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조몬스기를 봤으니 터닝 포인트를 돌아갑니다. 돌아가야 할 길이 멉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 중에 하나라는 조몬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 갈 볼까요. 수령이 7200년이란 설부터, 실제는 2170살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조몬스기'란 이름에 나오는 '조몬'은 일본의 신석기시대를 말하는 단어인데요. 조몬스기가 발견된 후 나무둘레를 잰후 이미 잘린 다른 그루터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대략 7200년 이상 살았다는 추정을 했고, 그때는 아마도 일본의 신석기 조몬시대 였으니 '조몬스기(조몬시대의 삼나무)'라고 명명하기고 한 것 같습니다. 다르게 나이를 재는 방법인 방사성 탄소 측정을 했을 때는 대략 2500~5000년, 또 다른 방법으로는 2170년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조몬스기가 발견되었던 1963년 무렵의 연구로는 아마도 조몬시대의 나무일 것이라는 추측 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발견'이라는 기사가 널리 퍼지면서 조몬스기란 이름이 자연스레 받아 들어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연중 엄청난 양의 비가 오고, 여름이 태풍이 몰아치는 야쿠시마의 삼나무들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 자료를 검색해보니, 대략 이런 답이 나왔습니다. 야쿠시마는 단단한 화강암 지반으로 되어있고, 지반의 흙은 많은 비에 쉽게 쓸려 내려가 버립니다. 그러니 삼나무의 뿌리는 일반적인 흙 지반에 비해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고, 뿌리내린다 해도 아주 오래 걸립니다. 아주 천천히 바위틈을 뚫고 들어간 뿌리는 영양분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느리게 자랐고, 느리게 자라다 보니 일반 삼나무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가설인데, 설득력이 있네요. 조몬스기로 향하는 도중 만났던 숲에서는 뿌리가 흙에 덥혀진 모습의 나무는 없고, 기기묘묘하게 바위를 휘감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천천히 자란 나무, 태풍에 아니 넘어질세~" 조몬스기는 올해도 남태평양의 강력한 태풍을 견디고 있을 겁니다. 자연으로부터 받는 감동, 힐링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강추하고픈 코스입니다.
2. 시라타니운스이 코스
야쿠시마의 3일째입니다. 조몬스기 코스가 아주 험난한 코스는 아니지만, 왕복으로 22km를 걸어야 하는 만큼 쉽게 다녀왔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가 꽤 아팠습니다. 그래서 야쿠시마의 두 번째 트레킹은 조몬스기 코스보다는 짧지만,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 나오는 숲의 모델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코스, 시라타니운스이(白谷雲水峽) 코스를 갑니다. 시라타니운스이 코스는 3가지의 코스가 있는데, 저희는 4시간이 걸리는 다이코이와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일단 미야노우라관광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면 계곡의 시작점에 도착합니다. '시라타니운스이'란 이름의 한자는 '白谷雲水'인데, 해석하자면 구름과 물이 있는 흰 계곡입니다. 사시사철 비가 많이 오는 만큼 구름과 물이 가득합니다. 흰 계곡은 아니지만, 짙은 녹음과 습기를 머금은 촉촉한 이끼가 가득한 계곡입니다. 애니메이션 모모노케 히매를 보셨다면, 이 숲에 도착하자마자 '미야자키 하야오(모노노케 히메의 감독)'가 이 숲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모노노케 히메'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습기가 가득한 숲의 바위와 흙은 빼곡히 이끼로 덮여있습니다. 마치 숲 전체가 녹색의 융단으로 덮여있는 것 같습니다. 조몬스기 코스만큼 커다란 나무가 있거나 1000년 이상 자라온 야쿠스기는 없지만, 사방을 모두 녹색의 숲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끼들에서 더욱 거대한 자연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숲의 상층부를 뚫고 들어온 빛이 녹색의 이끼에 비칩니다. 초록의 이끼들 사이에 아름다운 꽃이 보입니다. 이끼에 꽃이 피었나 하며 자세히 보니 정말 작은 꽃이 피어있습니다. 초록 바탕에 한점 수놓은 하얀 꽃이 아름답습니다. 꽃이라기엔 너무 작습니다. 사실은 꽃은 아니고 꽃의 역할을 하는 이끼의 포자라는데요. 접사로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로 작지만, 아름답습니다. 어제는 오래되고 거대한 자연에 감탄을 했다면, 오늘은 마이크로의 세계에 감탄합니다.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은 이름처럼 '물의 계곡'입니다. 마치 습도가 90%는 될 것 같은 공기인데, 공기청정기에서 수분을 충전시켜 내뿜어 주는 것 같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폐를 씻어내고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잘 왔어~ 이 느낌을 받으러 온 거잖아"라며 이번 여행을 기획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합니다.
삼본스기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오늘 코스의 반환점 다이코이와 바위가 보입니다. 섬의 중앙에 위치하고 고도도 높은 이 바위에 올라서면 야쿠시마의 가득 찬 숲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틀간의 트레킹도 이 섬의 속살은 커녕 껍질 정도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바위 넘어 거대한 숲이 보입니다. 만일 1970년대 경제를 위해, 생존을 위해 나무를 잘라내기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쿠시마는 그저 그런 변방의 섬으로 잊혔을 것이고, 모노노케 히메라는 거출한 명작도, 철철이 이 섬을 방문하는 여행객도 없었을 겁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합니다. 쿠스가와 등산로로 내려가면 쿠스가와 온천이 있습니다. 이틀간의 트레킹으로 지친 몸을 온천수에 담그니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만일 가족들과 함께 왔다면 조몬스기 코스는 어렵겠지만, 시라타니운스이 코스는 트레킹이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걷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지만, 다음에 꼭 함께 오고 싶은 코스입니다. 이 길을 걷고 나서 모노노케 히메를 본다면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습니다.
3. 야쿠시마 일주
이제 야쿠시마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후 3시의 고속선을 타기로 해서 오전은 여유가 있습니다. 예약해둔 렌터카를 받아서 야쿠시마 일주 드라이빙을 하려 합니다. 인원이 총 7명이라 승합차를 6시간 빌렸는데 1만엔정도의 비용이었습니다. 야쿠시마를 한 바퀴 도는 코스라 동과 서 어떤 방향으로 가도 상관이 없지만 저희는 서쪽 방향으로 돌기로 했습니다. 야쿠시마는 산도 많은 지형이라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을 운전해가니 숲의 주인인 사슴과 원숭이들이 등장합니다. 이 섬에 원숭이 2만, 사슴 2만, 사람 1만명이 산다니 사슴과 원숭이가 섬의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역시 섬의 주인들은 여유만만, 유유자적~ 지나가는 인간 관광객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파리도 아닌데 자연 상태의 사슴과 원숭이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입니다. 야쿠시마에서 가끔 보인다는 사슴을 탄 원숭이까지 본 것은 아니지만, 동물원에 놀러 온 유치원생처럼 40대 아제들도 마냥 신기한 감탄을 내뱄습니다.
차를 돌려 가면 오코노 타키(大川の滝) 폭포가 나옵니다. 낙차 88m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모습이 멋집니다.
폭포 근처까지 가서 시원한 물보라를 맞는 느낌도 강추네요. 다음으로는 바다에서 온천이 나온다는 히라우치 해중 온천(平内海中温泉)도 들립니다. 웅덩이처럼 생긴 온천에 들어가 바다에서 나오는 온천수에 잠깐 발을 담가 봅니다. 하지만 하루에 2번 간조 전후 약 2시간만 바닷속에서 나타나는 신기한 온천이니 방문시간을 미리 체크해두시면 좋습니다. 히노우라 해중 온천에서는 온전히 즐기지 못한 온천욕을 다음 코스인 오노아이다온천(尾之間温泉)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온천수가 정말 뜨거운 것이 핫핫핫 합니다. 탕 속에 오래 있고 싶어도 채 5분도 있지 못할 만큼 뜨거운 온천수라 피로를 풀 만큼만 적당히 즐기다 나오면 될 것 같습니다. 차는 야쿠시마에서 가장 큰 마을인 안보항을 지나 여행의 베이스캠프 미야노우라에 돌아왔습니다. 야쿠시마에서의 4일의 여행이 끝났습니다. 마지막 날의 렌터카 드라이빙은 사실 예약을 할지 고민을 했는데, 트레킹만 하고 갔다면 보지 못했을 야쿠시마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반나절의 짧은 시간이자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동네 구경을 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조몬스기 코스>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 - 구스카와 분기점 - 오카부보도 입구 - 오키나스기 - 윌슨 그루터기 - 다이오스기 - 후후스기- 조몬스기. 왕복 21.2km 평균 10시간.
<시라타니운스이쿄 코스> 모노노케 히메의 숲
타이코이와 바위 왕복코스 약 5.6km 4시간 소요.
* 야쿠시마 전체일정
1일. 가고시마 도착, 가고시마 시내 관광후 숙박
2일. 오전 야쿠시마행 고속페리 승선, 미야노우라 도착
3일. 조몬스기 코스 트레킹
4일. 시라타니운스이 코스 트레킹
5일. 렌터카로 섬 일주후, 오후 3시 고속페리로 가고시마 도착후 숙박
6일.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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