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미나로 가기까지의 여정
카타니아에서는 2일을 머물기로 계획을 세웠는데요. 하루는 카타니아를, 다음 하루는 타오르미나를 가기 위해서 잡은 일정이었습니다.
카타니아에 왔으니 근처의 에트나 화산 투어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막내가 어리기도 하고, 와이프는 화산이 무섭다고도 하여서 에트나 화산투어 대신 타오르미나를 가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타오르니마는 카타니아에서 차나 기차로 대략 1시간 걸립니다. 여행 첫날은 카타니아 시내 여행이라 렌터카가 필요 없어서 다음날부터 렌터카를 예약해서 차로 타오르미나를 가기로 했습니다. 아침 9시 렌터카 회사에 가서 예약한 차를 받습니다. 이전 편에서 얘기를 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수동차량이 아주 저렴합니다. 오토차량과 렌터가격이 2~3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운전학원에서 수동면허를 다시 따고 수동 차량으로 예약을 했지요. 렌터카 회사에 들러 간단히 서류를 제출하고 차를 받았습니다. 포드의 세단(한국의 K3정도 사이즈)을 받아 차량 상태를 확인하고 운전을 시작합니다. 아...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동이 자꾸 꺼집니다. 평지에서는 그냥저냥 달려지는데, 약간의 경사로에서 브레이크만 밟았다가 떼면 시동이 꺼집니다. 아마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거의 비슷할 텐데, 평지보다 경사진 도로가 훨씬 많습니다. 시동 꺼지고, 다시 시동을 넣어서 엑셀레이터를 밟아도 또 시동이 꺼집니다. 뒤 차량의 이태리 아재들이 소리칩니다.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내용은 당연히 '뭐 하냐', '차 빼라', '운전도 못하면서 왜 차를 가지고 나왔냐'일 것 같습니다. 당황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잘되었는데, 왜 안되지? 왜 시동이 꺼지지?' 온갖 의문이 생기면서 멘붕이 옵니다.
20도 정도 경사로에서 차를 올리지 못하고 자꾸 시동이 꺼지면서 차가 뒤로 내려오자, 뒤차의 이탈리아 아저씨가 샬라샬라 하더니 저희 차를 운전해서 올라가서 평지에 세워줍니다. 저는 "그라찌에(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아저씨는 이탈리어로 뭐라 뭐라 손짓을 하더니 자기차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핸드브레이크를 사용하라는 뜻 같기도 하고, 하여튼 갓길에 차를 세우고 생각을 해봅니다. 당황했던 정신이 돌아오자 나름 이유가 떠오릅니다. 한국에서는 트럭(포터)으로 수동연습을 했습니다. 트럭 엔진의 회전력(rpm)이 높아서 웬만하면 반클러치 좀 거칠게 해도 시동이 안 꺼지면서 차가 나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세단은 트럭에 비해 엔진힘이 적으니 트럭 느낌으로 반클러치를 잡으면 시동이 꺼진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반클러치를 잘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미 자신감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와이프가 제안합니다. "앞으로 9일을 차를 몰아야 하는데, 이 상태는 안 되겠다. 너무 무섭고, 위험하다". 돈 더 주고라도 차를 오토로 바꾸자고 합니다. 시칠리아는 산악지형이 많은 섬이고,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 저도 고집 피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정신을 똑디 차리고 처음 차를 빌린 렌터카 회사로 갑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차를 오토로 바꾸고 싶다고 하니 자기 사무실에는 오토 차량이 없답니다. 카타니아 공항 지점에는 있을 수 있으니 거기에 한번 가보랍니다. 공항으로 갑니다. 다행히 공항 가는 길에는 오르막이 없네요. 공항의 렌터카 지점에 도착해서 문의를 하니 여기에도 오토 차량이 한대로 없답니다. 렌터카 회사 직원 설명에 의하면 당신 같은 희소한 외국인들 말고는 모두 수동운전을 하니, 시칠리아엔 오토차량이 귀하답니다. 하긴 아직도 유럽에서는 수동기어 차량을 많이 쓰고, 이탈리아는 특히나 차는 수동기어가 디폴트값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 시간을 써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는 돌파만이 최선입니다. 다행히 공항까지 운전하면서, 세단차량의 변속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타오르미나행은 취소하고 가족들을 에어비엔비에서 쉬라고 돌려보냅니다. 시동이 꺼질 때마다 뒤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더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혼자서 운전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적당한 곳을 찾고 있는데, 에어비엔비 근처에서 커다란 3층짜리 공영주차장이 보입니다. 카타니아 재래시장이 열리는 곳인데, 오전 시장이 끝나고 차량이 많이 나갔는지 텅 비어있습니다. 차를 몰고 들어가 경사로에서 반클러치를 한 시간 동안 연습했더니 더 이상 시동이 꺼지지 않습니다. 벌써 시간은 오후 1시. 차 받고, 시동 꺼뜨리고, 공항 다녀오고 한다고 반나절이 지나버렸지만, 아직 타오르미나에 갈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가족들은 아직 의심에 찬 눈초리지만, 달라진 저의 운전실력을 보고는 안심합니다. 카타니아 시내를 벋어 나자 타오르미나까지는 고속도로로 이어져있습니다. 오전과 달라진 여유를 가지고 푸르른 지중해바다를 끼고 운전하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래 수동운전의 맛이 있어~ 이 맛에 옛날 아재들이 운전은 스틱이지~ 이런 말을 했구만ㅋㅋㅋ' 만일 오전에 공항 렌터카 지점에 오토 차량이 있어서 돈을 더 주고 차를 바꿨다면 운전은 좀 더 편해졌겠지만, 저의 멘털은 바사싹 깨어졌을 겁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수동운전 못하는 아버지로 남겨졌을 겁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비록 오전 시간은 날렸지만, 기분은 죽입니다.
드디어 타오르미나에 도착했습니다. 타오르미나는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입니다. 타오르미나역에 도착해서 위를 보니 경사가 상당합니다. 좁은 길에, 경사로에 차를 가지고 올라갔다가는 다시 "꺅~"하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물론 올라가면 주차할 곳도 없을 것 같아서, 널찍한 타오르미나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타고 타오르미나로 올라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 아니겠습니까...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타오르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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